본문 바로가기
경제 영화 리뷰

위에서 흐르고 아래에 고이는 것들: 영화 ‘기생충’으로 본 계급의 경제학

by 청산빔 2025. 5. 7.
반응형

기생풍 포스터 이미지

반지하의 경제학: 살아남기 위한 설계

《기생충》의 시작은 반지하다. 기택 가족이 사는 공간은 창문으로 발이 보이는 거리와 맞닿아 있고, 햇빛은 반쯤만 들어오며, 모퉁이엔 곰팡이와 바퀴벌레가 함께 산다. 단순한 가난이 아니다. 이 반지하는 사회적 위치를 은유하는 구조적 장치다. 영화는 이 공간을 통해 ‘가난이 단순한 개인의 책임이 아닌, 구조적 조건’이라는 점을 시각적으로 설득한다.

반지하에는 희망이 없다. 하지만 완전한 지하도 아니다. 계단 몇 개 위로 올라가면 현실이 있고, 몇 개 아래로 내려가면 생존 본능만 남는다. 기택 가족은 그 중간에 걸쳐 있다. 그들은 배달 앱도 없지만, 와이파이를 훔치며 버티고, 냄새나는 피자 상자 접기로 생계를 이어간다. 모든 생존은 불안정한 임시방편이다. 구조가 허술할수록 더 많은 창의력을 요구한다. 기정의 위조 포트폴리오, 기우의 즉석 튜터 면접—이 모든 행동은 살아남기 위한 설계다.

하지만 영화는 묻는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사회는 과연 정상인가?" 기택 가족은 악인이 아니다. 그들은 기회를 기다렸고, 작은 틈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 틈조차도 권력자의 시선 안에서는 언제든 닫힐 수 있는 문이다. 이 점에서 반지하는 단지 가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기회는 있지만 결코 평등하지 않은 구조를 상징한다.

《기생충》은 반지하를 통해 경제적 하층민의 시야와 냄새, 빛의 결핍을 정교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사회의 모든 흐름을 느끼지만, 그 흐름의 중심에는 없다. 물이 차면 가장 먼저 잠기고, 쓰레기차가 오면 가장 가까이에서 그 냄새를 맞는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하부구조다.

기택 가족이 박 사장 집에 들어가는 것은 단지 ‘취업’이 아니다. 그것은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려는 마지막 시도다. 그러나 영화는 그 계단이 얼마나 가파르고, 미끄럽고, 불안정한지를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게 보여준다.

경계 없는 집, 분리된 사람들: 공간으로 말하는 계급

《기생충》의 공간 배치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봉준호 감독은 집 자체를 하나의 캐릭터처럼 사용해 계급을 구분하고, 그 경계를 은밀하게 시각화한다.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는 사회 최하층의 시야를 반영한다면, 박 사장 가족의 집은 ‘경계가 없는 듯하지만 사실은 철저히 구획된’ 공간이다. 평평하고 넓은 마당, 투명한 유리창, 감각적인 가구들. 모든 것이 자유롭고 열린 것처럼 보이지만, 이 집은 완벽하게 설계된 계급 보호막이다.

기우가 처음 박가에 입성할 때, 계단을 오르며 ‘다른 세계’에 진입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때부터 영화는 계속해서 상향 이동(Upward Mobility)의 이미지를 계단, 문, 벽을 통해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박 사장의 집에 들어선 기택 가족은 절대 ‘진짜 구성원’이 될 수 없다. 그들은 공간을 빌려 쓰는 존재다. 낮에는 가정부, 운전사, 과외 선생으로 행동하지만, 밤이 되면 다시 지하실처럼 ‘숨겨진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박 사장의 집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열린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규칙과 시선으로 철저히 통제된 공간이다. 기택 가족은 냉장고를 맘대로 열 수 없고, 응접실에 무단으로 앉을 수 없으며, 식탁에서 눈치를 봐야 한다. 이처럼 집은 소유의 문제가 아닌, ‘접근 가능성’과 ‘허용된 경계’의 문제로 바뀐다. 영화는 이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이 곧 ‘권력’임을 보여준다.

특히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계급 간 긴장이 극대화된다. 잔디밭에서의 파티는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상층이 하층을 소비하고 있는 구도다. 기택은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결국 통제된 공간 안에서 폭발하게 된다. 경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공간이야말로 가장 폭력적인 경계선이었던 것이다.

《기생충》은 공간을 통해 묻는다.
“이 집은 누구의 것인가?”
그 질문에 답하는 순간, 우리는 사회가 얼마나 정교하게 사람을 구획하고 배치하는지 깨닫게 된다.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 가족이 부잣집 거실에서 주인 없는 파티를 즐기는 장면. 웃음과 술잔 사이로 계급과 욕망, 위태로운 경계가 스며든다.
“잠깐의 환희는, 곧 진실의 그림자에 잠식된다.”

냄새와 빗물: 자본주의의 진짜 폭력

《기생충》이 가장 강렬하게 폭발하는 지점은 말이 아닌 감각의 묘사다. 대사는 차갑고 정제되어 있지만, 진짜 갈등은 ‘냄새’와 ‘빗물’이라는 감각적 요소를 통해 폭발한다. 이 두 요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층민이 겪는 보이지 않는 폭력의 본질을 보여주는 장치다.

박 사장은 기택의 냄새를 여러 번 언급한다. 정면으로 비난하지 않지만, 계속해서 “지하철 냄새”, “기분 나쁘게 익숙한 냄새”라고 말한다. 그 냄새는 생존의 냄새다. 환기 안 되는 반지하, 습한 이불, 퀴퀴한 세탁기 옆 주방. 그것은 가난한 자가 피할 수 없는 생활의 잔재다. 하지만 박 사장 가족에게 그것은 불쾌함의 상징일 뿐이다. 이처럼 냄새는 계급의 레이더가 된다. 아무리 깔끔하게 옷을 입어도, 아무리 말투를 바꿔도, 냄새는 숨길 수 없다. 그것은 정체성의 흔적이고, 계급의 낙인이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 기택 가족이 빗속을 뚫고 반지하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상징 그 자체다. 위쪽 동네는 잔잔한 빗소리를 배경으로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아래쪽은 재난 영화처럼 침수되고 쓰레기가 둥둥 떠다닌다. 같은 빗물인데도,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누구에겐 낭만이고, 누구에겐 파괴다. 사회적 위치가 곧 환경을 규정짓는다는 사실이 이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 장면 이후 기택은 눈빛이 달라진다. 그는 박 사장의 냄새 반응에서 철저히 ‘다름’을 자각한다. 우아한 말투, 정중한 미소 뒤에 깔린 무의식적인 혐오와 배제를 읽은 것이다. 결국 그의 분노는 ‘사건’이 아니라, ‘누적된 모욕’에서 터져 나온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비언어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기생충》은 말한다.
“진짜 폭력은 주먹이 아니라, 무시다.”
그리고 그것은 늘 은밀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아래를 향해 작동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