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재벌 2세의 갑질 – 영화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베테랑》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인물은 단연 조태오입니다. 재벌 3세이자 유아독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그는, 법과 도덕 위에 서 있다고 믿으며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대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직원의 목숨조차 도구처럼 다루고, 경찰 수사를 압박하고, 언론을 조작합니다. 이 인물은 허구의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한국 사회의 수많은 뉴스 헤드라인을 떠올려 보면 놀랍도록 현실에 닿아 있습니다.
조태오의 캐릭터는 관객에게 불쾌감을 주는 동시에 묘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그의 말투, 표정, 행동은 철저히 계산되어 있고, 그 속엔 “돈이면 다 된다”는 자본 권력의 오만함이 녹아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는 갑질 논란, 비자금 조성, 기업 탈세, 불법 증여, 노동자 인권 무시 등 재벌 관련 사건이 꾸준히 언론에 오르내려 왔습니다. 영화는 이를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조태오라는 캐릭터 하나만으로도 현실 재벌의 축소판을 보여줍니다.
중요한 점은, 이 영화가 단순히 악인을 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태오의 행동을 사회 구조의 산물로 그린다는 점에서, ‘개인의 일탈’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임을 강조합니다. “왜 이런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부와 권력을 세습하며, 책임 없는 권리만을 누리는 구조는 조태오를 만들고, 묵인하며, 심지어 보호합니다.
《베테랑》은 이러한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관객에게 묻습니다. “이건 정말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인가?”라고. 그 물음이 섬뜩할 만큼 현실적이기 때문에, 영화는 단순 오락을 넘어선 사회 고발적 힘을 갖게 됩니다. 특히 경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 영화를 통해 기업의 도덕성, 공정 거래, 책임 경영 같은 주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불공정 거래와 유착 구조 – 한국 경제를 병들게 한 시스템의 실체
《베테랑》은 단순한 ‘재벌 3세 갑질 스캔들’이 아닙니다.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 즉 권력과 자본, 법이 뒤엉킨 불공정한 게임판입니다. 조태오는 단지 악당이 아니라, 이 시스템이 만든 대표선수일 뿐입니다. 그의 뒤에는 묵인하는 임원진, 정보를 흘리는 언론인, 조용히 이익을 챙기는 협력업체, 눈감아주는 고위층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보호합니다. 영화는 그 복잡한 유착 관계를 통쾌하게 드러냅니다.
특히 조태오가 중소 협력업체를 무리하게 압박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계약 조건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장면은 현실의 불공정 거래를 연상시킵니다. 실제로 많은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을의 위치’에 놓이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계약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그 결과, 단가는 낮아지고 품질은 떨어지며, 종국에는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베테랑》은 이 고리를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는 조태오가 경찰과 언론을 어떻게 이용하고 조작하는지도 적나라하게 나옵니다. 고위직 경찰이 내부 정보를 흘리고, 기자는 광고를 미끼로 기사 방향을 바꾸는 장면은 정경언 유착이라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범죄를 은폐하거나 축소하며, 돈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정의’의 기준을 바꿉니다.
이는 경제 시스템 전반에 ‘신뢰의 붕괴’를 초래합니다. 시장이 작동하려면 공정한 경쟁과 투명한 기준이 필수인데, 권력과 자본이 결탁한 순간부터 룰은 무의미해집니다. 《베테랑》은 이 구조 속에서 개인의 정의감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진짜 위험은 ‘조태오’라는 인물이 아니라 그를 만든 시스템 그 자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경제 블로그 독자라면 이 영화를 단지 액션 오락물로 보기보다는, 현실 경제를 갉아먹는 불공정과 유착 구조의 축소판으로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그 속엔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마주치는 현실이 녹아 있습니다.
정의는 살아있다? – 돈보다 양심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
《베테랑》의 통쾌함은 단순히 악당이 망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닙니다. 진짜 힘은 “정의가 아직 살아있다”는 희망에서 비롯됩니다. 조태오처럼 권력과 자본을 등에 업은 인물이 마음껏 활개 치는 사회에서, 유해진이 연기한 형사팀은 돈도 인맥도 없지만 끝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그들의 수사는 정석과는 거리가 멀고, 거칠고 비효율적이지만, 그 안에는 양심과 책임, 분노와 연대가 담겨 있습니다.
류승완 감독은 영화 내내 ‘정의로운 영웅’을 비현실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형사 서도철(황정민)은 실적에 집착하고, 화도 잘 내며, 매번 사건에 이성적으로 대응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타협하지 않고, “이건 아니잖아”라는 외침으로 행동에 나섭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관객은 감정을 이입하게 됩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정의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불의 앞에서 고개 돌리지 않는 작지만 분명한 실천입니다.
특히 후반부, 조태오가 모든 걸 돈으로 덮으려 할 때 서도철이 그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넌 죗값을 치러야 해”라는 말은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자본이 법 위에 군림하는 사회에 대한 반격처럼 느껴집니다. 정의는 늘 승리하지 않지만, 싸우는 사람이 있기에 그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죠.
이 영화는 결국 묻습니다.
“모두가 타협할 때, 당신은 양심을 지킬 수 있는가?”
경제와 자본, 권력이 결탁한 세상에서 진짜 위대한 건 거대한 시스템을 뒤엎는 영웅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부당함에 침묵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용기’입니다.
코인 시장, 부동산, 주식 시장처럼 자본이 움직이는 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보를 독점하고 불공정하게 이익을 챙기는 소수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투자자, 소비자, 시민 한 명 한 명이 깨어 있어야 전체 시스템도 건강해집니다. 《베테랑》은 오락 영화 이상의 울림을 주며, 블로그 독자들에게도 “경제 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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