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도 가격표가 붙는 세상: 치료받을 권리의 조건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보기 드문 영화다. 누군가의 생사가 “약값”이라는 숫자에 좌우된다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이 영화는 단순한 감동 드라마가 아니다. 자본주의 의료 시스템에서 생명이 얼마나 쉽게 가격표가 붙고, 의료가 특권이 되어버리는지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청용은 처음엔 인도산 복제약을 밀수해 큰돈을 벌려는 단순한 장사꾼이었지만, 그가 마주하게 된 현실은 그보다 훨씬 냉혹했다.
백혈병 환자들은 정품 항암제인 ‘글리벡’을 구입할 수 없어 죽어간다. 약값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고, 보험은 현실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 구조 속에서 ‘살기 위해 불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생긴다.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를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각 인물은 절박한 생존자이며, 한 명 한 명의 사연이 관객의 심장을 조이듯 파고든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 노인을 부양하는 가장, 삶의 희망을 잃은 청년 등… 그 누구도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지만 무겁다. “약은 왜 이토록 비싼가?” 그리고 “누가 약값을 결정하고, 누가 그 이익을 챙기는가?”. 영화는 거대 제약회사의 독점 구조와 정부의 방관, 그리고 ‘합법’이라는 말 뒤에 숨은 비인간성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중요한 건, 복제약은 실제로 환자들을 살릴 수 있음에도, 그것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단속되고 처벌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단순히 눈물만 유도하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말한다. “치료는 선택이 아니라 권리여야 한다.” 그러나 이 당연한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너무 멀게 느껴진다. 이 작품은 생존 자체가 경제력에 의해 결정되는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의료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강력한 질문을 던진다.
정의는 불법일 수 있는가: 영웅인가 범죄자인가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불법은 항상 나쁜 것인가?”
주인공 청용은 인도에서 복제약을 밀수해 판매한다. 법적으로는 명백한 범죄다. 하지만 그 약을 통해 수많은 백혈병 환자들이 생명을 이어간다. 청용은 악의 없는 상인도, 전형적인 영웅도 아니다. 초반에는 이익만을 좇고, 환자들의 고통에도 무감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차 변해간다. 환자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간절한 눈빛, 그들이 건네는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 마디가 그의 마음을 뒤흔든다.
문제는, 그의 행위가 법 위에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정품 약을 보호하기 위해 복제약 유통을 단속하고, 제약회사는 특허권을 근거로 청용을 고소한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 법이 정의를 대변하지 못할 때, 우리는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법과 정의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영화의 가장 씁쓸한 진실이다. 복제약은 위조품이 아니다. 실제 효능이 입증되었고, 환자들은 이를 통해 생명을 유지한다. 하지만 단지 ‘정식 수입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그 약은 범죄의 증거가 된다.
이 영화는 ‘불법이지만 옳은 일’이 존재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청용의 행위는 경찰과 법원 앞에서는 죄지만, 환자들에게는 구원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어느 쪽이 진짜 범죄자인지를 묻는다. 수백 배의 이윤을 붙여 약을 파는 제약회사인가, 아니면 생명을 위해 규정을 어긴 장사꾼인가?
결국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영웅담이 아니다. 이 작품은 정의가 언제나 깨끗하고 드라마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정의는 때로 법과 충돌하고, 불법이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한다. 영화는 말한다. “법은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사람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청용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가 했던 선택은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어쩌면 시대가 만든 진짜 영웅일지 모른다.
누가 시장을 움직이는가: 약값, 자본, 그리고 눈물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질문한다. “생명을 위한 약이 왜 사치품이 되었는가?”
약은 단지 화학적 조합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삶이고, 희망이며, 내일을 위한 유일한 열쇠다. 그러나 영화는 이 약이 자본의 논리 속에서 어떻게 가격이 결정되고, 누구의 손에 들어가고, 누구는 거부당하는지를 보여준다. ‘시장’이라는 이름 아래, 생명조차 수요와 공급, 브랜드와 특허의 틀에 갇혀버린다.
영화 속 핵심 갈등은 바로 이 약값에 있다.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은 정품일 경우 수백만 원에 이르지만, 복제약은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다. 환자들은 당연히 복제약을 원하지만, 제약회사는 특허를 무기로 이를 단속한다. 정부는 제도라는 명분으로 복제약 유통을 막는다. 시장은 살아있지만, 그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환자가 아닌 자본과 권력이다.
청용은 그 시장의 허점을 파고든다. 그는 의도적으로 싼 복제약을 들여오고, 환자들에게 유통한다. 이 행위는 불법이지만, 동시에 시장이 외면한 이들에게 접근 가능한 의료를 제공한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묻는다. “진짜 시장은 누구를 위해 움직여야 하는가?” 단지 돈을 가진 자만을 위한 구조라면, 그건 시장이 아니라 착취일 뿐이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해 무작정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하고 설득력 있게 문제를 드러낸다. 약값은 왜 그렇게 비싸야만 하는가? 기업의 이익은 생명을 외면할 만큼 중요한가? 영화는 이 질문을 청용의 표정을 통해, 환자들의 침묵을 통해,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물로 보여준다.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말한다.
“시장에 양심이 없다면, 사람이라도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싸게 판 약은 위험하다고. 하지만 청용은 대답한다. “돈이 없으면 그 약조차 없는 사람도 있다.” 그 말 한마디에 담긴 무게는, 자본과 정책이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인간의 절박함이다.
'경제 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머니볼》로 배우는 데이터 투자 전략 – 숫자로 시장을 이기는 방법 (1) | 2025.05.07 |
---|---|
위에서 흐르고 아래에 고이는 것들: 영화 ‘기생충’으로 본 계급의 경제학 (1) | 2025.05.07 |
거래의 그림자: 영화 ‘맨 온 엣지’로 본 홍콩 범죄와 권력의 이면 (3) | 2025.05.06 |
조직이 묵인한 진실: 영화 일곱 개의 회의 (七つの会議)로 본 일본 대기업의 구조적 부패 (0) | 2025.05.05 |
루나 코인 사태 그 이후: 영화 ‘폭락’으로 본 암호화폐 시장의 빛과 그림자 (3) | 2025.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