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의 유혹: 가상자산 열풍에 올라탄 평범한 사람들
영화 《폭락》은 단지 금융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루나 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자산 붐 속에서,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금융 지식도, 투자 경험도 부족한 소시민이다. 처음엔 단지 ‘몇 만 원이라도 더 벌 수 있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지금 안 사면 손해야”, “누구는 이걸로 집 샀대” 같은 말에 점점 깊이 빠져든다. 영화는 그 심리를 리얼하게 그린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 하지만 ‘확신’은 누구도 줄 수 없는 시장에서,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 전문가에 의존하게 된다.
‘남들도 다 하니까’, ‘이대로 가면 나만 뒤처질 것 같아서’라는 감정, 바로 FOMO(Fear Of Missing Out) — 이 불안이 투자 결정을 대신한다. 영화는 코인 차트를 바라보며 잠을 설치고, 작은 수익에 희열을 느끼고, 순식간에 하락할 땐 멍하니 무너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왜 투자하는가?” 영화의 초반부는 마치 성공담처럼 전개된다. 주인공은 짧은 시간 안에 원금의 수십 배를 벌게 되며, 처음에는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마저 비웃게 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폭락은 시작된다.
가상자산 열풍은 많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돈벌이 이상의 의미였다. 불안한 일자리, 오르기만 하는 집값, 저축으로는 불가능한 미래 속에서, 코인은 유일한 역전의 가능성처럼 비쳐졌다. 영화는 그런 심리를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주인공의 선택을 비판하지도 않는다. 대신 묻는다.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몰릴 수밖에 없었는가?” 이 질문은 단지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불안과 절박함을 대변한다.
폭락은 예고되어 있었다: 시스템의 허점과 방조
《폭락》은 단지 개인의 욕망이나 실수만을 문제 삼지 않는다. 이 영화의 가장 날카로운 지점은, 루나-테라 사태와 같은 폭락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점을 꼬집는 데 있다. 영화 속 투자자들은 시스템을 신뢰했다. 알고리즘으로 설계된 스테이블코인이라며, '디지털 금'이라 불릴 만큼 안정적인 자산이라며, 수많은 미디어와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 안정성은 허상이었고, 설계 자체에 내재된 리스크는 치명적이었다.
영화는 이 허점을 조용히, 하지만 강하게 비판한다. 수익률 20%를 보장한다는 문구, 디파이(DeFi)라는 생소하지만 매력적인 단어들, 그리고 끊임없이 올라가는 가격. 누군가는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아니, 일부는 알고 있었지만 침묵했다. 영화는 이를 “묵인된 탐욕의 구조”라고 말한다. 코인을 발행한 쪽도, 투자 유치를 중개한 쪽도, 심지어 정부와 언론도 그 열기에 편승하며 위험을 방조했다.
특히 눈여겨볼 장면은 주인공이 자신이 투자한 프로젝트가 ‘실제로는 자금 순환 없이 발행과 소각만으로 버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대목이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갑작스럽게 화면 색감을 차갑게 바꾸고, 정적 속에 주인공의 숨소리만 강조한다. 마치 ‘지금까지 믿었던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관객도 함께 깨닫게 하려는 연출이다.
《폭락》은 구조적 비극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준다. 욕망은 개인의 것이지만, 그 욕망이 시스템적으로 부추겨졌을 때, 그것은 개인의 책임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영화는 말한다. “누구나 속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설계되었으니까.” 이는 단순히 하나의 코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불투명한 시스템과 그 안에서 반복되는 착취 구조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무너진 뒤에 남은 것: 인간성과 연대에 대한 질문
영화 《폭락》은 단순한 금융 재난극이 아니다. 이 작품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그 이후’를 말하기 때문이다. 한탕을 꿈꾸던 사람들, 시스템의 허점에 휘말린 투자자들, 모두가 손해를 본 후에도 세상은 그대로 굴러간다. 그러나 사람들의 내면은 송두리째 무너져 버렸다. 돈만 잃은 것이 아니라, 신뢰, 관계, 자존감까지도 함께 붕괴된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폭락 이후 삶의 방향을 잃는다. 아내와의 관계는 틀어지고, 친구와는 돈 문제로 멀어지고, 부모님에게는 숨기기에 급급하다. 돈이라는 매개가 인간관계를 이어주던 시대에서, 그것이 사라진 순간 사람 사이의 연결 고리도 같이 끊어져 버린다. 영화는 이 지점을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당신이 가진 것이 사라졌을 때, 누가 곁에 남아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또한 영화는 이 절망의 끝에서 작지만 따뜻한 순간을 포착한다. 같은 피해를 본 투자자들과의 익명 커뮤니티 대화, ‘다음엔 속지 말자’며 나누는 조용한 공감, 작은 동네 북카페에서 벌어지는 투자 공부 모임. 이런 장면들은 단지 스토리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진정한 연대가 시작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돈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비로소 돈이 아닌 방식으로 사람을 다시 만나는 과정인 것이다.
《폭락》은 관객에게 마지막에 묻는다. “이 시스템에서 빠져나온 이후,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 그리고 대답 대신, 잔잔한 여백을 남긴다. 그것이 진짜 의미 있는 질문이라는 듯이. 이 영화는 가상자산의 위험을 경고하는 동시에, 극단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점에서 《폭락》은 단지 ‘코인 영화’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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