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약자와 흔들리는 정의
《보통사람》(2017)은 1987년, 격동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제목처럼 ‘보통사람’인 강력계 형사 강성진(손현주)의 시선을 통해 그 시대의 어둠을 조명한다. 그는 정의감은 있지만 거칠고, 생활력은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늘 벼랑 끝에 서 있는 인물이다. 영화는 이처럼 생계와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가장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성진은 평범한 가장이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돌보며, 집을 장만하기 위해 매일 강도 높은 수사와 야근을 견딘다. 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전세 보증금이 밀리고, 아이 수술비가 부담되는 순간, 성진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그 선택은 권력과의 위험한 거래로 이어진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정의라는 개념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돈 앞에서, 가족 앞에서, 삶의 절박함 앞에서 ‘원칙’은 사치가 된다. 성진은 범인을 쫓는 경찰에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점점 변해간다. 이는 단지 개인의 타락이 아니라, 시스템이 사람을 어떻게 구부리고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는 서사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당시 수많은 한국 가정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도성장 뒤편에 남겨진 빈곤과 불안정, 그리고 정권의 강압적 통제가 뒤섞인 시대. 성진은 그 시대의 모든 짐을 짊어진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존재다. 관객은 그를 쉽게 비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조금씩 성진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정의는 알고 있다. 다만, 그걸 지킬 여유가 없을 뿐이다.”
권력의 조작과 국가 시스템의 통제
영화 속 핵심 인물인 국정원 요원 최규남(장혁)은 강성진에게 접근한다. 그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범인을 조작하고, 사회 불안을 통제하려는 ‘국가 권력’의 얼굴이다. 표면적으로는 국가 안보와 국민 보호를 내세우지만, 실제 목적은 정권 유지와 여론 조작이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공공의 이익’을 명분으로 개인의 삶과 신념이 무너지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최규남은 말한다. “이 나라는 한순간도 불안정하면 안 된다.” 하지만 영화는 되묻는다. “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거짓이 필요했는가?” 성진은 점점 더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그의 수사는 진실에서 점점 멀어진다. 권력은 정보를 통제하고, 언론을 이용하며, 보통사람을 가해자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영화 후반부, 조작된 사건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정점을 이룬다. 그 순간, 성진은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깨닫는다. 가족, 명예, 정의 — 그리고 자기가 믿었던 국가까지. 《보통사람》은 단지 개인과 권력의 갈등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어떻게 거짓 위에 세워졌는지를 고발한다.
이 작품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유는, 그 조작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현실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뉴스, 경찰, 정부조차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숨길 수 있다는 것. 영화는 이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정의는 만들 수 있지만, 진실은 감출 수 없다.”
권력의 대가와 삶의 회복
강성진은 결국 권력의 도구가 되어버린 자신의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 후반부는 그의 무너짐과 회복의 과정을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그려낸다. 진실을 외면한 대가로 그는 동료의 신뢰를 잃고, 가족과도 멀어진다. 무엇보다 자신이 지키려던 ‘정의’조차 부서져버린다.
하지만 영화는 절망에서 끝나지 않는다. 성진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까지 스스로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한다. 외압을 무릅쓰고 진실을 폭로하려는 그의 모습은, 권력에 맞서는 평범한 사람의 용기를 보여준다. 영화는 그 어떤 위선보다도, 단 한 명의 ‘정직한 선택’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강성진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나 역시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영화는 단순한 히어로나 영웅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삶 속에서 수없이 고민하고 실수하면서도, 결국 올바른 방향을 찾으려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보통사람》은 제목처럼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거대한 권력 앞에선 미약한 존재일 수 있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변화는 시작된다고 영화는 말한다. 진정한 회복은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라, 각자의 양심과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진다.
“보통사람의 용기는, 세상을 가장 특별하게 만든다.”